"밀어" 외친 무리 실제로 확인된다면…법적 처벌 가능할까

입력
기사원문
안준영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검찰, 대형참사 사례 통해 법리 검토 착수
중대재해로 볼 순 없지만…경찰·지자체 책임에 의견 분분
"밀어" 외친 무리 사실관계 파악 어려워
"유언비어·추측성 마녀사냥 자제해야" 목소리도
지난달 30일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서 경찰관계자들이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압사 참사’로 300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지만, 참사의 책임 소재를 따져 묻는 데는 난항이 예상된다. 명확한 주최자가 없는 행사인데다, 압사 사고의 최초 원인과 시점 등을 규명하는 일이 굉장히 어려운 탓이다. “누군가 고의로 밀었다”는 목격담이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이들 무리가 실제 법적 처벌을 받을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검찰청 사고대책본부(본부장 대검 형사부장 황병주)와 서울서부지검 비상대책반(반장 검사장 한석리)은 과거 대형참사 사례 분석과 법리 검토에 1일 착수했다. 서해 훼리호 침몰(1993년),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세월호 참사(2014년) 등 검찰이 수사에 나섰던 참사들을 바탕으로 법리적 쟁점을 세세히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 경찰에 참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참사를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중대시민재해’로 볼 여지가 있느냐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하지만 핼러윈 축제는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행사로 콘서트처럼 명확한 관리 주체가 없다. 게다가 사고가 발생한 골목은 교량이나 터널 등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중교통수단의 범주로 보기도 어려워 관련 규정을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다면,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마땅한 조치를 취했어야 하기에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무법인 시우의 최재원 변호사는 “지자체나 경찰이 시민 안전을 위해 인원과 보행을 제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면 그 의무를 100% 이행하지는 못했으므로 과실이 있을 수 있다”며 “국가 배상 소송도 가능할 것 같지만, 주최자가 없는 행사이기 때문에 배상 책임 비율이 높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법무법인 율하의 전경민 변호사는 “직무유기 정도 외에는 검토를 할 수 있는 법령이 없어 보인다”며 “특정인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 같고, 민사 쪽으로 볼 때 불법 증축물에 관한 부분 등에 대해서는 손해 배상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수사를 통해 지자체나 경찰의 잘못을 밝혀낼 가능성은 있지만, 이런 잘못이 형사적으로 처벌 가능할 정도로 중대한 것인지 판가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일 용산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관련 유실물 센터에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유실물들이 놓여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참사 당시 골목 위쪽에서 특정 무리가 “밀어 밀어”라고 외치며 계속 사람들을 미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는 목격담도 확산하고 있다. 이들 무리가 강하게 힘을 줘 민 탓에 사람들이 마치 파도처럼 휩쓸려 내려갔고, 아래쪽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하며 참사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토끼머리띠를 했다’ ‘4~5명 남성 무리였다’ 등 확인되지 않은 구체적 묘사까지 나와 경찰이 현장 CCTV와 SNS 동영상 등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워낙 많은 인파가 밀집해 있었고 주변 소음도 컸기에 특정하는 작업 자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들 무리가 특정된다고 하더라도 처벌 가능성에 대한 법조계 의견은 엇갈린다. 만일 혐의를 적용한다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폭행치사나 고의성 여부를 떠나 과실치사상 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많은 인파 속에서 자신이 누군가를 밀 경우 이들이 넘어질 수 있다는 걸 예상하면서도 계속해서 밀었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밀지 마세요’ ‘살려달라’ 등의 얘기를 듣고도 만일 계속해서 밀었다면 과실치사나 폭행치사를 적용해 기소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소와 별개로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은 까다롭다는 의견도 있다. 최재원 변호사는 “이 무리가 참사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면서까지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밀었는지, 앞쪽의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계속해서 ‘밀어’라고 외쳤는지 등을 법정에서 입증하는 일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며 “죄명을 적용해 기소를 할 수는 있겠으나 실제 법적 책임을 따져 묻는 일은 힘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로 추측성 마녀사냥을 해서는 안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