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개시명령서 송달 시작… 법적 근거·실효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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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1.30. 오후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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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웅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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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여 명 중 350여 명에 교부
화물연대 “강제노동 위헌 소지”
국가 경제 위기 발동 요건 모호
당사자 부재 때 송달 효력 없어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한 업무개시명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관련 부서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 25분 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현시점부터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이 집행될 예정이다. 명령서를 전달받지 않기 위해 회피하는 경우 형사처벌에 더해 가중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업무개시명령 대상자는 시멘트업 운수 종사자 2천500여 명이다. 관련 운수사는 209곳이다. 연합뉴스


정부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이하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서를 전달하면서 노조를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명령 발동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제도 자체의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지자마자 시멘트 운송 업체를 상대로 현장조사를 벌여 시멘트 업계 화물노동자 2500여 명 중 350여 명에게 명령서를 교부했으며 이중 20명에 대해서는 우편송달도 완료했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명령이 송달되면 즉시 효력이 발생해 이를 전달받은 화물노동자는 다음 날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30일 간의 면허정지(1차 처분) 또는 취소(2차 처분)가 될 수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노조는 업무개시명령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29호 ‘강제노동 금지’ 조항과 정면으로 충돌해 위헌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ILO 협약 29호를 비준해 올해 4월부터 발효한 상황이다. ILO 29호 협약은 ‘강제노동 협약’으로, 처벌 위협으로 강요받는 노동과 스스로의 의지로 하지 않는 노동을 ‘강제노동’으로 규정한다.

협약 문서에는 ‘강제노동’ 예외 상황 사례로 △전쟁이나 화재, 홍수, 기근, 지진, 극심한 전염병 등과 같은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인구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로 규정돼있다. 화물연대 파업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화물연대 부산지역본부 송천석 본부장은 “업무개시명령은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강제노동’을 명령하는 셈”이라며 “정부가 화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개인사업자나 자영업자라고 규정했으면서 업무 복귀를 강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무개시명령 발동 요건의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 운송 거부’와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 할 때 업무개시명령 발동에 대한 정당성이 부여된다. 화물연대는 화물노동자들의 도로 위의 안전을 위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국가 경제 위기’ 문구 또한 기준이 모호하다.

업무개시명령서 송달의 적법성도 쟁점이다. 업무개시명령의 효력은 명령서를 당사자에게 송달한 시점을 기준으로 발휘돼 다음 날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업무개시명령의 절차는 행정절차법상 원칙적으로 행정명령서가 당사자에게 적법한 송달이 이뤄져야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행정명령서의 송달은 우편, 교부, 정보통신망 이용 등의 방법으로 할 수 있는데, 송달받을 자의 주소, 영업소, 전자우편 주소 등으로 해야 한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송달은 송달받을 자가 동의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개별 화물노동자의 경우 고정된 출퇴근 장소가 없어 주소지나 사업장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 당사자가 부재하면 송달 효력이 없다. 송달이 불가능한 경우 관보에 공고하는 공시송달이 가능하나 공고일부터 14일이 지나야 효력이 발생하며 긴 시간이 소요돼 실효성도 떨어진다.

화물연대가 업무개시명령 무효 가처분 신청을 검토 중이라 밝히면서 정부와 노동자 간 법적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법무법인 시우의 최재원 변호사는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는지 아니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는지 이를 입증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와 노조의 법적 다툼으로 가게 된다면 업무개시명령의 요건 중 모호한 부분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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