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없어도 '이것' 내면 감형?..형사공탁특례제도 꼼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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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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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스1화상
[파이낸셜뉴스] 피해자와의 합의가 없더라도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법원에 공탁금을 낼 수 있도록 한 개정법이 최근 시행되면서 되레 '꼼수감형'을 부추기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피해자 개인정보 유출 등 2차 피해를 막으려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제도 남용을 막기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아도 가해자가 법원에 피해회복금을 공탁할 수 있는 개정 공탁법(형사공탁특례제도)이 지난해 12월9일 시행됐다. 형사공탁은 형사 사건 피고인이 법원에 공탁금을 맡겨두면 추후 피해자가 이를 수령해 피해 회복에 사용할 수 있게끔 한 제도다.

개정법 시행 전엔 피해자의 성명·주소·주민등록번호 등을 알아야만 공탁금을 낼 수 있었다.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지 않으면 인적 사항 확인이 어려워 공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각에선 피고인이 합의 의사가 없는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부정한 방법으로 알아낸 뒤 합의를 종용하는 등 2차 가해를 낳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막기 위해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됐다.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인적 사항 대신 재판이 진행 중인 법원·사건번호 등만 알아도 공탁이 가능하다.

문제는 피해자로부터 용서 받지 못했음에도 피고인이 무작정 피해회복금을 맡기는 행위에 대해 법원이 이를 감형 사유로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했더라도 돈만 있다면 '꼼수 감형'이 가능해진 셈이다.

실제 지난해 7월 부산 해운대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22개월 된 여아를 유치원 통학버스로 치어 숨지게 한 운전기사 A씨에 대해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4단독(서근찬 판사)은 지난달 21일 1심에서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유족 측은 예상보다 낮은 형량이 판결난 데에는 '형사공탁특례제도'가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유족 측이 합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음에도 운전기사 A씨 측이 법원에 형사 공탁금을 냈기 때문이다.

유족 측을 대리하는 최재원 변호사(법무법인 시우)는 "피고인 측은 단 한 마디 진정 어린 사과를 하지 않다가 선고 직전 '보험 회사서 지급된 돈으로 합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며 "이에 '돈으로 합의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뜻을 밝히자 그 돈으로 형사 공탁금을 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단순히 공탁금을 내는 것만으로 감형이 된다면 돈 있는 사람에게만 관대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가 될 것"이라며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진실성 있게 노력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양형을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개정 공탁 제도가 남용되지 않도록 추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미정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심의관은 "피해자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 피고인의 경제력 자체가 피해 회복 노력의 정도로 평가돼 형사공탁제도가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진지한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음을 증명할 증거를 제출토록 해 합의가 있는 경우와 합의 없이 공탁만 하는 경우 양형에 차이를 둘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불특정 피해자에 합의의 뜻을 전하고자 할 때 개정 공탁 제도가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보이스피싱 사건을 예로 들며 "오래된 사건인데다 피해자 수가 많을 경우 (피해자)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워 피고인 측에선 합의하고 싶어도 하지 못 한 경우가 있었다"며 "이런 경우 개정 공탁 제도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차원에서 공탁 제도가 개정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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