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지 않는 노동자 죽음… 모호한 법 손질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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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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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시행 후 사망 늘어
최근 부산 공사장 추락사 2건
“안전장치 필수 아니다” 주장
예방 조치 의무 명확한 규정을
부산 원도심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새해에도 부산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적용되는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등에서 연이어 사고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중처법이 추상적이라 실효성이 없다”며 명확한 법적 지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3일 부산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2시 53분 부산 동래구 낙민동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A 씨가 추락했다. A 씨는 건물 외부 임시 구조물에서 작업 중 지하 2층으로 10m가량 추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A 씨는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지난달 29일 동래구 수안동 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도 노동자 B 씨가 에어컨 실외기실 도색 작업을 하다 추락해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B 씨가 추락한 14층은 42m 높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동래구에서 벌어진 공사장 추락사고 2건 모두 중처법 적용 대상이다. 숨진 A 씨와 B 씨는 발견 당시 안전장치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업체 관계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해당 작업은 안전장치가 필수가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재해 없는 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에 따르면 부산 중대재해 사망사고는 중처법 시행 이후 오히려 증가했다. 2022년 37명이던 사망자 수는 지난해 40명으로 늘었다. 특히 올해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부산에서 노동자 5명이 사망했다.

노동자 사망사고가 반복되자 중처법 실효성이 도마에 올랐다. 그간 중처법은 추상적인 내용만을 규정해 실제 사건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중처법 제1조에는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 의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중처법 위반 조사는 구체적인 법률과 가이드라인이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을 매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노동자 사망으로 인한 중처법 위반죄는 산안법상 사업주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이 전제된다. 즉, 사망 사고에 중처법이 적용되려면 산안법 위반이 전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산안법 가이드라인상 안전장치가 필수가 아닌 작업 중에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산안법 위반을 전제하지 않은 중처법 위반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 해석의 여지가 있다. 실제 중대재해 사고 여러 건이 중처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됐다. 중처법 위반이 엄중한 형사 제재를 받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처벌로 이어지기 쉽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책임자를 처벌해 안전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취지의 중처법이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시행령이라도 구체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시우 최재원 변호사는 “활발한 사회적 논의와 입법적 결단을 통해 중처법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며 “‘모든 공사장에 추락 방지 장치를 필수로 설치해야 한다’와 같은 명확한 지침을 마련해야 불명확한 법률에 따른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노동자 사망사고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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