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마다 소화기 준비” 부산 법조타운도 ‘불안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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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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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대구 수성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현장에서 정밀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연제구 거제동 법조타운에서 일하는 변호사 A 씨는 지난 주말 온라인으로 사무실용 소화기를 대량 주문했다. 화재 상황에 재빨리 대처하기 위해 직원 책상마다 소화기를 한 대씩 두기로 한 것이다. A 씨는 “대구 참사 소식을 접한 뒤 주변 법조인들이 하나같이 불안감을 호소한다”며 “휴대용 호신용품 구입을 고민하는 여성 변호사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7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으로 부산 법조계도 불안에 떨고 있다. 대형 참사였음에도 ‘변호사들이 먼저 문제를 제공했다’는 식의 싸늘한 시선에 법조인들의 상처와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현행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법조인들을 겨냥한 보복범죄 위협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대구 법조타운 방화 참사에 충격

스프링클러 설치 여부 직접 확인

여성 변호사들 호신 용품도 구입

사법 체계 불신에 보복 위험 커져

“신뢰 잃은 법조계 자성” 목소리도

부산 법조타운에서 근무하는 형사 전문 변호사 B 씨는 수년 전 협박 메일을 받았던 악몽을 최근 다시 떠올리게 됐다.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의뢰인으로부터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끈질기게 받았던 기억이다. B 씨는 “변호사 사무실은 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 누구나 쉽게 문을 열고 찾아올 수 있어 예전부터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위협의 정도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검찰청이나 법원처럼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한 빌딩 1층에 보안요원을 두거나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대구 화재 사건 이후에는 법무법인 직원들이 빌딩 곳곳에서 스프링클러 설치 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변호사 C 씨는 예상치 못한 주변의 싸늘한 시선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C 씨는 “대구 화재 관련 댓글란을 열어 보면 ‘돈만 밝히는 변호사들이 참사를 자초했다’ ‘법조계가 바뀌지 않으면 언제든 또 일어날 일’이라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교수 등 일부 전문가도 법조계의 자성부터 촉구했다”며 “법조계를 향한 뿌리 깊은 혐오와 불신에 할 말을 잃게 됐다. 모방범죄도 발생할까 우려스럽다”고 털어놨다.

법무법인 시우의 최재원 변호사는 “우리 헌법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변호인으로부터 협력과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해 놓았다”며 “이런 법률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법조인을 겨냥한 보복성 범죄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14일 성명을 통해 대구 참사를 ‘변호사제도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한변은 “재판 결과가 불만스럽다고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테러와 보복을 자행한다면, 법치주의는 무력화되고 원시적 야만 사회로 퇴행할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 등 관련 단체들은 변호사의 조력 받을 권리를 실질화하는 각종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변은 변호사의 변호 활동을 이유로 한 보복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의 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했다. 전국 변호사 회원들에게 신변위협 사례 등 설문조사를 통해 실태 파악에 나서는 한편, 법률사무 종사자를 겨냥한 폭력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입법 활동도 병행할 계획이다.

법무법인 예주 김소연 변호사는 “납득할 수 있는 재판 과정, 절차 준수 등 사법 시스템을 둘러싼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이번 참사처럼 어긋난 분노가 표출되지 않도록 쌍방의 얘기를 들어 보고 중재하고 설득하는 시간이 앞으로는 보다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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