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치상’ 유죄 인정…‘치매·우발적’ 주장 안 먹혀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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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돈 ‘징역 3년’ 법정구속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기소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대한 선고일인 29일 오전 부산지방법원 301호 법정 앞에서 오거돈 전 시장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기소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대한 선고일인 29일 오전 부산지방법원 301호 법정 앞에서 오거돈 전 시장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강제추행치상·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대해 징역 3년이 선고된 데에는 ‘강제추행치상’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재판부는 오 전 시장의 범행을 ‘권력형 성범죄’로 규정하며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처참한 심정과 사회 구성원이 느낀 참담함을 헤아려야 한다”고 오 전 시장을 꾸짖었다. 재판부가 신체적 상해가 아닌 정신적 상해를 강제추행치상으로 인정한 것은 성범죄 피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법원, 정신적 피해 ‘상해’로 인정

권력형 성범죄 엄벌 입장 반영

“혐의에 비해 형량 너무 가볍다”

“강력 처벌 필요” 비판 여론 거세


■강제추행치상 유죄 인정 ‘결정타’

부산지법은 29일 오 전 시장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오 전 시장에게 적용한 강제추행 2건과 강제추행치상 1건, 강제추행미수 1건 모두를 유죄로 판단했다. 이날 재판부는 실형 선고 이유 중 상당 부분을 강제추행과 강제추행치상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검찰은 지난해 5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청구된 사전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되자, 오 전 시장에 대해 강제추행치상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의 ‘승부수’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류승우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발생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더라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피고인의 지위를 고려할 때 2차 가해로 인한 피해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류 부장판사는 “재판 기간이 길어진 것 역시 오 전 시장의 또 다른 강제추행 건에 대한 수사에서 비롯된 만큼, 강제추행과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사이의 인과관계와 예견 가능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현행 형법상 강제추행치상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5년 이상의 양형 기준을 적용한다. 재판부가 이날 오 전 시장에 대해 징역 3년을 적용한 것은 강제추행치상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오 전 시장이 고령인 점과 범행 이후 피해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부산시장에서 사퇴한 점을 참작한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정신적 피해’를 상해로 인정한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성범죄 관련 재판과 관련해 피해자의 상해 범위를 점차 넓게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률사무소 시우 최재원 대표변호사는 “법원이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상해로 인정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권력형 성범죄’ 단죄 필요성 인정

법원이 오 전 시장에 대해 징역 3년과 함께 법정구속한 것은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권력형 성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 전 시장을 비롯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잇따르는 권력자들의 성범죄로부터 시민들과 사회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류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노골적으로 위세를 행사하지 않았으나 △부산광역시의 수장이었던 점 △범행이 관용차와 집무실에서 일어난 점 △범행 당시 피해자들은 업무 수행을 위해 범행 장소에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권력형 성범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류 부장판사는 “부산시장으로서 기세등등해 피해자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거침없이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것을 보면 측은하지만 피해자들의 심정은 처참했고, 사회가 느낀 감정 역시 참담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오 전 시장 측의 방어 논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 전 시장 측은 우발적인 범행이었고, 정신적 인지 장애(치매) 등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계획적인 범행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피고인의 범행 행태 등을 고려할 때 이례적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각종 정신 관련 검사의 결과를 고려할 때 범행에 영향을 줄 만큼의 정신 인지장애 증상이 있었다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혐의에 비해 형량 적어” 비판 여론

선고가 내려진 직후인 29일 오전 11시께 부산지법에서 오거돈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1심 판결이 권력형 성폭력을 뿌리 뽑기에는 부족하다며 항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시민들은 오 전 시장에게 적용된 혐의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민정(28·부산진구) 씨는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인 만큼 다른 성범죄에 비해 더 무거운 형량이 내려져야 한다”고 분노했다. 부산시청의 한 직원은 “검찰이 구형한 징역 7년 정도면 본보기로 적절하다고 생각했는데 형량이 줄어 실망스럽다”며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권력형 성범죄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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