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시공 홈네트워크’, 아파트 준공 3년 내 문제 제기해야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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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된 아파트 입주민 대처법은?

부산 황령산에서 바라본 부산 도심. 부산일보DB 부산 황령산에서 바라본 부산 도심. 부산일보DB

전국 아파트 대부분이 ‘지능형 홈네트워크(이하 홈네트워크)’의 법적 기준을 지키지 않아 해킹으로 현관문이 열리는 등 보안에 취약한 사실이 확인(부산일보 8월 24일 자 10면 등 보도)됐다. 국토교통부는 부랴부랴 최근 전국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홈네트워크 기술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공문을 보냈고, 부산시도 나서 기술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준공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이미 준공된 아파트 입주민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현재 경남 등 일부 지역에서 이와 관련한 소송이 한창 진행 중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세대당 최소 3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점을 감안해 피해액이 전국적으로 3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법조계 “준공한 지 3년 지났다면

민법상 단순 손해배상 진행해야”

김해·울산 등에서 관련 소송 중




■전국 아파트 피해 최소 3조 원

홈네트워크는 출입문, 엘리베이터, 전등, 난방 등 아파트 세대 내 모든 장치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정부는 일찌감치 ‘홈네트워크 시대’를 대비했다. 국토부, 산자부, 과기부 등 세 부처가 2008년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32조의 2(지능형 홈네트워크)를 신설했고, 이듬해인 2009년 기술기준을 최초로 고시했다. 의무 설비 20가지 중 핵심은 정전 때 홈네트워크를 가동하는 ‘예비 전원장치’와 해킹을 방지하기 위한 ‘홈게이트웨이’다.

홈네트워크가 본격적으로 시공된 것은 2010년 이후다. 임대 아파트 일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민간 분양 아파트에는 홈네트워크가 설치된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감독 소홀과 시공사의 외면으로 실제 시공 과정에서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홈네트워크 기술기준이 지켜지지 않아 입주민이 입는 피해는 어느 정도일까. 통신업계에 따르면, 홈네트워크 20가지 기술기준을 지키려면 가구당 300만~6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2018년부터 3년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123만 4207세대. 단순 계산으로 가구당 최소 300만 원만 상정해도 피해액은 최소 3조 6900억 원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준공 이후에는 홈네트워크 기술기준 준수가 원천적으로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예비전원장치를 새로 시공하려면 아파트 단지 발전기 용량 확대, 발전기에서 세대까지 연결되는 전기 선로 공사, 세대 내 분전함 교체 등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아파트마다 홈네트워크 기술기준을 얼마나 준수했는지 알 수 없어서 일괄적으로 추정하기 매우 힘들다”며 “예비전원장치가 시공됐다면 세대당 최소 300만 원, 이조차 없다면 최소 600만 원은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자소송 준공 3년 내 제기해야

법조계에서는 아파트 준공 3년 안에 홈네트워크 하자보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동주택관리법 ‘시설공사별 담보책임기간’에 따르면, 홈네트워크 하자보수 기간은 3년이다. 미장, 타일 등 마감공사는 2년, 옥외급수, 난방전기 설비공사 등은 3년이다. 대지조성, 철근 콘크리트 공사는 5년이다.

공동주택관리법에는 아파트 하자보수에 대해 종류별로 기간을 달리해 놨다. 해당 기간 내에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등 아파트 하자가 발생했다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준공 3년 안에 먼저 문제를 제기한 뒤 실제 소송은 이후 10년 안에 진행하면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3년이 지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파트 하자보수 기간을 넘으면 민법상 단순 손해배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단순 손해배상의 피해 입증 책임은 입주민에게 있어 승소가 쉽지 않다고 덧붙인다. 법률사무소 ‘시우’ 최재원 변호사는 “공동주택관리법과 집합건물법에 명시된 아파트 하자보수 규정은 시공사보다 힘이 약한 입주민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한 법”이라면서 “하자담보책임기간 내에 청구하면 되고, 대법원 판례 취지상 하자발생 이후 10년 내에 소송을 진행하면 된다”고 전했다. 이어 최 변호사는 “홈네트워크 하자보수 문제는 어떻게 입법 후 10년 넘게 이렇게까지 지켜지지 않았는지 정말 의아하고, 이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홈네트워크 미시공과 관련한 소송은 전국적으로 진행 중이다. 경남 김해의 A아파트(1500세대), B아파트(900세대), C아파트(3500세대) 등 3곳은 건설사를 상대로 민사 소송 중이다. 앞서 울산의 D아파트(850세대) 역시 지난해부터 소송을 진행 중이다. ‘예비전원장치 미시공은 아파트 하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례가 있다.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은 예비 전원장치를 미시공해 국토부에 ‘하자’ 판정을 받았던 한 시공사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홈네트워크 설비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사항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설계상의 하자”라고 판시했다. 올 4월 항소심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아파트 월패드에 예비전원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것은 하자”라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경남 김해시을)은 “그동안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잘 몰라서 넘어갔다”며 “제도도 결국 사람이 운용하는 것으로, 정부나 지자체 공무원이 책임감을 가지고 이런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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